파블로프의 실험과정과 결과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고전적 조건화를 기계적인 과정으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한 견해로 고전적 조건화를 조망할 때는 이 학습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하고 기계적인 과정인 것처럼 보이는 고전적 조건화에도 많은 요인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전적 조건화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이에 관련된 여러 현상을 살펴보자.
1. 습득
파블로프의 실험에서 우리는 습득이라는 특정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그 현상은 기술하였다. 습득이란 새로운 조건반응이 형성 또는 확립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파블로프는 조건반응이 습득되는 정도가 조건자극과 무조건 자극을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으로 제시하는가 하는 자극의 근접성에 따른다고 하였다. 즉, 두 자극 사이의 제시 간격이 짧을수록 조건반응은 더 잘 습득된다는 것이다. 자극 근접성은 중요한 변인이지만 이 조건만 충족된다고 해서 조건화가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시간상으로 근접해서 또는 짝지어져서 나타나는 무수히 많은 자극을 경험하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만이 고전적 조건화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많은 자극의 짝지음 중에서 일부분만이 조건화되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가? 이에 대한 해답은 다양한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겠지만 순서와 시간적 관계성이 특히 중요하다. 조건자극과 무조건자극을 제시하는 네 가지 방법에는 동시 조건화, 지연 조건화, 흔적 조건화, 역행 조건화가 있다. 네 가지 조건화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효과적인 짝짓기가 될 것인가? 이를 탐구한 실험 결과에 의하면 지연 조건화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역행 조건화의 경우 가장 비효과적인 짝짓기다. 동시 조건화와 흔적 조건화는 역행 조건화보다는 낫지만 지연 조건화와 비교할 때 효과적인 짝짓기는 되지 못한다.
2. 소거와 자발적 회복
토끼에게 버저 소리와 함께 안구에 공기분사를 반복해서 제시한 후 버저 소리만 들려주어도 토끼는 눈꺼풀을 감는 반응을 한다. 그러면 학습이 완료되어서 눈꺼풀 조건반응을 잘하게 된 후에 공기분사 없이 계속해서 버저 소리만 들려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예처럼 무조건자극 없이 조건자극만을 계속 제시하면 이미 습득되었던 조건반응의 강도가 점차 약화하고 결국에는 완전히 사라지는데, 이를 소거라 한다. 조건자극과 무조건자극 간의 연합을 제거하면 과거에 습득되었던 조건반응이 약화하는 소거도 일종의 학습 과정이다. 소거 시행 동안에 동물은 습득에서와는 달리 조건자극에 뒤이어 아무런 결과도 수반되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학습된 반응이 약화하는 현상에는 망각도 있다. 과거에 습득된 반응의 강도가 약화한다는 점에서는 소거와 망각이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소거의 원인은 조건 자극에 뒤이어 무조건자극이 제시되지 않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지만, 망각의 원인은 단지 오랫동안 반응을 수행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조건반응을 소거시킨 후 몇 시간 또는 며칠이 지나 조건자극을 다시 제시하면 동물은 어떤 반응을 할까? 대부분의 경우 동물은 다시 반응할 것이다. 이처럼 추가적인 훈련 없이 어느 정도의 휴식 후에 소거되었던 반응이 다시 나타나는 현상을 학습심리학자들은 자발적 회복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때 나타나는 반응의 크기는 처음 습득되었던 최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지속 기간도 일시적이다. 소거되었던 조건반응이 다시 나타나는 자발적 회복은 소거에 의해 학습된 반응이 무효화 또는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차단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자발적 회복은 마약 중독을 극복하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운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중독에서 회복되었다고 생각하는 코카인 중독자가 흰색 파우더와 같이 마약과 강한 연합을 이루고 있는 자극을 갑자기 접한다면, 마약을 다시 사용하고자 하는 극심한 충동을 경험할 것이다.
3. 자극일반화와 변별
조건화가 일어난 후에 유기체는 조건화 과정에서 경험하였던 조건자극이 아닌 그것과 유사한 자극에 대해서도 반응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파블로프의 개는 조건 자극인 종소리가 아닌 버저 소리에 대해서도 침을 흘리고, 토끼는 다른 버저 소리를 듣고도 눈꺼풀을 깜박이는 반응을 나타낸다. 이처럼 특정 자극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을 학습한 유기체는 원래의 자극과 유사한 새로운 자극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하는데, 이를 자극일반화라 한다. 행동주의 창시자인 존 왓슨은 일반화에 대한 아주 인상 깊은 연구를 하였다. 그 실험의 피험자는 11개월 된 앨버트라는 유아였는데, 아마도 심리학 역사상 가장 어리고 유명한 피험자일 것이다. 앨버트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흰쥐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왓슨과 레이저는 놀라움을 일으키는 큰 소리와 짝지어 흰 쥐를 제시하였다. 앨버트는 큰 소리에 대해서 공포반응을 하였고, 여러 번의 짝지음으로 인해 흰 쥐는 공포반응을 끌어내는 조건자극이 되었다. 5일 후에 왓슨과 레이저는 앨버트가 흰쥐와 비슷한 흰 털을 가지고 있는 토끼, 개, 털 코트, 산타클로스 마스크, 그리고 왓슨의 흰 머리털과 같은 자극에 대해서도 공포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앨버트의 이런 반응 성향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우리 속담의 맥락과 동일하지 않은가? 조건화가 일어나기 위해서 조건자극과 무조건자극이 시간상으로 적절하게 배열되어야 했듯이 자극일반화 역시 어떤 조건으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극일반화를 지배하는 기본 법칙은 새로운 자극이 원래의 조건자극과 유사할수록 일반화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유사한 두 자극에 대해서 유기체가 유사한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유기체가 두 가지 자극에 대해 다른 경험을 하면 원래의 조건자극과 유사한 새로운 자극에 대해서 점차 상이하게 반응할 것이다. 학습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유사한 두 자극의 차이를 식별하여 각각의 자극에 대해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현상을 자극 변별이라고 한다. 자극일반화와 반대로 자극 변별에서는 새로운 자극과 원래의 조건자극 사이에 유사성이 적을수록 변별이 더 잘 이루어진다.
4. 고차조건화
다음과 같은 실험을 가정해보자. 먼저 종소리와 음식을 짝지어 개의 타액 분비 반응을 조건화한다. 훈련을 통해 종소리가 조건자극의 역할을 하게 되면, 이 종소리를 기존의 무조건자극 대신 사용하고 다른 자극(불빛)을 새로운 조건으로 사용하여 반복해서 짝지어 제시한다. 그 후 종소리 없이 불빛만 제시하면 개의 타액 분비 반응은 어떻게 될까? 이와 같은 조건에서 개는 불빛에 대해서 타액 분비 반응을 나타낸다. 불빛은 음식물과 짝지어진 적이 전혀 없는데도 종소리와 짝지어져 타액 분비 반응을 일으키는 속성을 갖게 되는데, 이 과정을 2차 조건화라 한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다른 조건자극, 예컨대 특정 색상(파란색)과 불빛을 반복해서 짝을 지어 제시하면 나중에 파란색만 제시되어도 타액 분비 반응이 나타난다. 이 과정을 3차 조건화라고 한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새로운 조건자극을 제시하여 새로운 조건화를 반복해 나가는 과정들을 고차조건화라고 한다. 고차조건화는 고전적 조건화가 반드시 자연적인 무조건자극이 존재할 때만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조건화에서는 새로운 조건반응이 이미 확립된 조건반응(더 정확하게는 조건자극)을 기초로 형성되는 것이고, 이에 따라 고전적 조건화를 통해 습득되는 행동의 범위가 크게 확장될 수 있다. 레 스콜라와 같은 학습심리학자는 인간의 경우 많은 조건반응이 고차조건화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2022.05.29 - [심리학] - [심리학] 자극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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