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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생물학

[일반생물학] 자연선택

by swh0z 2022.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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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생물 집단이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생물학자들은 지구에 살고 있는 종들이 시간에 따라 변해왔다는 것, 즉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제안했다.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는 1809년 진화가 실재한다는 강력한 증거를 재시했으나, 진화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설득력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진화에 관한 설득력 있는 기작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1820년대에 젊은 다윈(Charles Darwin)은 지질학(지구의 거대한 나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자연사(다양한 생물이 자연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살아가는지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에 열정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의사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마취 없이 진행되는 수술에 대한 혐오감을 느낀 다윈은 의학을 포기하고 영국국교회 성직자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신학보다 과학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다윈은 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들과 친하게 지냈고, 그 중에서 특히 식물학자인 헨슬로(John Henslow)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31년에 헨슬로는 다윈을 전 세계 탐사항해를 준비하고 있던 왕립해군함정 비글호(HMS Beagle)에 승선을 추천했다.

 

5년 동안의 항해에서 다윈은 가능할 때마다 항상 육지에 올라 암석을 연구하고 동식물의 표본을 관찰하고 수집하였다. 그는 남아메리카와 유럽에서 관찰한 종들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였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온대지역(아르헨티나와 칠레) 종이 유럽의 온대지역 종보다 남미의 열대지역(브라질)의 종과 더욱 유사하다는 점을 관찰하였다. 다윈이 에콰도르 서쪽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험하였을 때, 그 곳에 서식하는 동물 종의 대부분이 남아메리카 본토에서 발견된 종과 유사하지만 섬 고유종(다른 어떤 곳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는 독특한 종)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또한 다윈은 갈라파고스의 여러 섬 사이에서 동물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일부 동물이 남아메리카의 본토에서 갈라파고스 제도로 이주하였고, 그 후 이들이 각 섬에서 서로 다른 변화를 겪게 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그는 이러한 변화의 원인에 대해 궁금해 했다.

 

1836년에 다윈이 영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자신이 관찰한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다. 다윈의 생각은 지질학자인 라이엘(Charles Lyell)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지구가 오늘날에도 느리게 작용하는 힘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는 생각을 대중화시켰다. 다윈은 유사한 생각이 생물계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년 동안 그는 세 가지 주요 명제를 근거로 진화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 종은 불변의 존재가 아니며, 시간에 따라 변한다.

2. 서로 다른 종은 공통조상을 공유하며, 시간에 따라 서서히 서로 분기해왔다. (다윈이 변형혈통(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고 명명한 개념)

3. 시간에 따른 종의 변화를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연선택은 형질의 차이에 기초하여 다른 개체에 비해 일부 개체의 생존과 생식 능력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명제 중 첫 번째는 다윈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더 일찍이 몇몇 과학자들은 진화가 실재함을 주장했다. 더 혁명적인 주장은 서로 다른 종들이 공통의 조상을 통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두 번째 명제였다. 그러나 다윈은 아마도 자연선택이라는 세 번째 명제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다윈은 대부분의 종에서 수많은 개체들은 생존보다 생식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대개 자손들이 부모와 닮았긴 했으나 그들은 서로 간에 또는 부모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식물과 동물의 육종가가가 특정 형질을 갖고 있는지 여부에 기초해 종종 번식용 개체를 선별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선택은 그 식물이나 동물 후손들의 모습에 극적인 형태 변화를 초래했다. 자연집단에서 생존과 생식의 가장 좋은 기회를 가진 개체들이 똑같이 '선택'되면 자신의 특성을 다음 세대로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다윈의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의견은 자연이 자연집단 내에서 선택을 한다는 것으로 이 과정은 더 잘 생존하게 함으로써 더 잘 번식하게 하는 형질이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1844년에 다윈은 진화의 한 과정으로서 자연선택의 역할을 설명하는 장문의 글을 썼다. 그러나 그는 더 많은 증거를 모으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해 출판을 꺼리고 있었다. 하지만 말레이반도의 생물상을 연구하고 있었던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에게서 한 통의 편지와 논문 원고를 받았던 해인 1858년에, 다윈은 어쩔 수 없이 논문을 출간하게 되었다. 월리스는 다윈에게 자신의 논문 원고를 검토해 줄 것을 부탁했는데, 원고는 다윈의 견해와 거의 동일한 자연선택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처음에 다윈은 월리스가 그의 견해를 선점하였다고 생각한 나머지 낙심하였다. 하지만 다윈이 1844년에 작성한 글의 일부를 월리스의 원고와 함께 1858년 7월 1일 런던의 린네 학회(Linnean Society of London)에 발표함으로써, 두 사람 모두가 자연선택이란 견해의 공동 주창자가 되었다.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의 작업을 신속하게 마무리하여 이듬해에 이 책을 출간하였다.

 

비록 다윈과 월리스가 독립적으로 자연선택의 개념을 발표하게 되었지만, 다윈이 그의 견해를 먼저 발전시켰다. 게다가 종의 기원은 진화 자체의 전제와 진화과정으로서의 자연선택에 대한 이해를 모두 뒷받침하는 다양한 분야로부터 얻어진 철저한 증거를 제공하는 경이로운 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두 개념 모두 월리스보다 다윈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859년 종의 기원의 출간은 과학자들과 일반 대중 사이에 상당한 관심(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과학자들은 남은 19세기의 대부분을 진화론과 지구의 생명 역사 기록을 검증하기 위한 생물학 및 화석 자료를 축적하는 것에 시간을 보냈다. 1900년까지 생물학적 진화의 실재(당시 시간에 따른 집단의 물리적 특징의 변화로 정의됨)는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 확립되었다. 생물학자들이 20세기 유전에 관한 세부 사항을 발견함에 따라, 진화의 유전적 기작이 분명해졌다. 1970년대 후반 DNA염기서열결정 방법이 개발됨으로써 생물학자들은 종내 및 종간 진화적 변화에 대한 정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술은 진화생물학 분야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지난 30년 동안 진화의 관찰, 실험 및 이론을 다루는 25만 편 이상의 과학 논문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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